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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난 것들/어쩌다 데이터

따르거나 이끌거나 떠나거나 2 : 퇴사 회고

by 일말고프로젝트 2023. 9. 20.

지난 퇴사 고민 이후 1년 6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퇴사를 고민할 때  그 흔적을 남겨두니 꽤나 유용했던 터라 만 4년을 채운 이 회사에 대한 회고를 써두려 한다.

 

 

그동안 어떤 경험을 했고, 무엇을 얻었지?

1. 풍부한 데이터

지난 직장의 단연 최고의 장점은 풍부한 데이터였다. 어쩌면 대한민국 오프라인 결제 데이터 중 최다, 최대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만큼의 어마어마한 데이터양을 가지고 있었다. 또 나름의 데이터 거버넌스도 잘 되어 있어 서치나 데이터 오너쉽을 찾는데도 그리 어렵진 않았다.(우리 회사가 그나마 낫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학부생 시절에 만지는 데이터가 아무리 빅데이터라고 해도 데이터 양이 기가를 넘기는 쉽지 않았는데 지난 회사에서 프로젝트 한 번 할 때마다 다루는 데이터의 양은 몇 백기가는 되었다. 덕분에 철저한 전처리, 속도를 고려한 쿼리 작성, 시간 복잡도, 공간 복잡도를 아주 현실적으로 공부해보고, 또 적용해볼 수 있었다.

지난 회사는 데이터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다양한 필드의 데이터를 만질 수 있었다. 특히 멤버쉽 회사였던 만큼 한 고객을 다양한 결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각도로 분석해 볼 수 있었다. 좋은 성능을 뽑아내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한계점, 실질적인 분석, 힘을 갖는 분석 인사이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2. 분석 인사이트의 실체

지난 회사는 그룹 내 계열사로서 타 계열사 지원 업무가 많았다.덕분에 유통사, 제조사 등 다양한 산업의 비즈니스를 맛볼 수 있었고, 또 설득할 힘이 있는 인사이트라는게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었다. 같은 계열사라지만 어떻게 보면 철저하게 을인 상황에서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야 하는 기이한 구조였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기준에서 '돈을 낼 만한' 데이터 인사이트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이 부분이 지난 회사에서 느낀 한계점이자 페인 포인트였지만, 또 그만큼 아주 하드코어하게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지점이었다. 이 것만으로 매우 긴 글이 될 거 같아 이 부분은 추후에 지난 데이터 드리븐 글 이 후로 바뀐 관점을 한번 정리해서 써봐야겠다. 짧게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그들을 매료시킬 획기적이고, 매력적이고,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뛰어난 성능의 인사이트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데이터로 맞장구 쳐가며 그들과 동기화 해가다 보면 '그들이 구매할 만한' 인사이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나중에 더 정리해 자세히 써 봐야겠다.

 

3. 애자일한 프로젝트

이번 이직을 준비하면서 지난 회사 생활에서 역량 개발에 주효했던 경험들을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애자일 프로젝트를 경험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회사에선 다양한 형태의 애자일 조직 경혐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많았던 터라 정말 적극적으로 이용 했었다. 사내 스타트업 도전, 챌린지, 스터디, 사내 공모전, 주니어 보드 등 정말 회사에서 해 볼 수 있는 제도적 애자일 조직은 다 경험 해본 것 같다. 원래 지겹고 반복적인 일에 쉽게 질려하는 터라 이런 새로운 자극이나 도전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맞지만, 본 업무 이외에 병행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젝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나 업무를 위해 함께 할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적극적으로 작게나마 팀 빌딩을 해본 경험은 나중에 꽤나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부분이 아쉬웠지?

1. 실험, 실행, 피드백에 대한 아쉬움

정말 많은 인사이트 레포트를 만들고, 발표를 했지만 그 중 실제 실행된 프로젝트들은 손에 꼽는다. 심지어 그 실행된 프로젝트들은 원칙적으로 보자면 내 월권으로 실행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음 잘 들었어요'에 그치거나 '그건다 아는 건데'에 그쳤다. 물론 이 두 결과에 그친 이유가 그저 그런 혹은 돈을 낼 정도의 fancy한 인사이트가 아니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시작부터 구조적으로 실행 혹은 실험까지 이어질 수 없는 구조의 업무 형태가 많았다. 애초에 보고 자료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인사이트 보고서이거나 인사이트 레포트 갯수를 채우기 위한 보고서 등 아주 다양한 형태의 요식행위로서의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데이터 인사이트가 힘을 가지려면 자그마한 것들부터 실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험은 커녕 적용 근처에 가는 것도 엄청난 기획안과 기안, 보고서, 결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 너무 좌절스러웠다. (그걸 넘었다고 하더라도 이젠 유관 부서 협조, KPI 재설정 등 말도 안되는 벽이 있었다...) 대표님과의 주니어 보드 회의에서 우리 회사에서 가장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은 

 

 "실패조차 해보기까지가 너무 어렵다"

 

였다. 그만큼 데이터 인사이트가 숫자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을 딛기까지 엄청나게 힘들었다.

 

2. 논의할 동료의 부재

사수 없이 팀 내 데이터 분석 인원이 나 혼자였던 상황은 쉽지 않았다. 여러모로 다른 팀원분들과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회사 평가 시스템에서 성과와 직결되는 개인 KPI 설정이 요상한 탓에 팀을 거의 외주 집단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각자의 일을 나눠서 하자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다. (일이 너무 몰려서 도와달라고 했을 때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들은 정말 신박한 소리에 많은 분노를 느꼈다..) 당연히 맡은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 직장인이라지만 도움, 협업, 논의가 필요할 때 같은 팀이라면 가능하다면 도와주거나 함께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거나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나름의 정신 승리를 해본 건 뭐든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니 분명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의 루프가 돌고 있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네 -> 어차피 혼자 할 줄 알아야 해 -> 그래도 논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자 -> 혼자 고민하니까 발전이 없네 -> 내가 여러 아이디어로 분석해보면 되지 -> ..
그래도 51:49 정도로 생각이 기울고 있는 건 '논의할 동료가 있다면 예상치 못한 게 튀어나올 수 있지 않을까'이다. 단순히 막히는 부분에서 조언을 구할 사수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기보다 문제에 접근할 때부터 함께 다양한 시각을 던져줄 수 있는 기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커리어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며...

내 첫 퇴사인 만큼 생각해볼 것도 많고, 엉켜있는 것도 많았던 터라 글을 마무리하기까지 꽤나 오래걸렸다.(애초에 블로그 글을 안쓴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결론적으론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 글을 나누기로 했다. 이렇게 이전 직장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나니 지난 번 퇴사를 고민했던 글(https://project-notwork.tistory.com/107)과 겹치는 것들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반복되는 부분이 이직까지 끌고 간 큰 원인들 중 하나겠지.

다음 글은 어떻게 지금의 직장을 선택했는지 과정을 정리 해봐야지.

 

 

(양승화님의 퇴사 회고 포맷을 참고했다)

https://m.blog.naver.com/leoyang99/22313945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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