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MZ세대 VS 경영진
어쩌다 보니 올 초부터 회사내 주니어보드로 활동하고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2주에 한 번씩 경영진과 토론할 만한, 혹은 개선할 만한 주제를 가지고 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초기에는 복지, 혜택, 근무 여건 등의 다소 캐주얼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MZ세대의 가치관, 회사에 대한 기대, 비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담스럽고 긴장됐던 처음과 달리 요즘은 정말 경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닌 의견이 다른 패널과 토론을 하러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가게 되었다.
6개월 정도 하다보니 반복해서 부딪히는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 부분이 바로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아닐까 싶었다. 굳이 MZ세대를 타자화 하고 싶지 않고, 경영진과의 대립구도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단지 반복해서 토론하다보니 인식의 차이,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있어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1. 소통의 혜택은 누가 보나?
1) 소통하고 싶다며 왜 말을 안하니?
이제까지 주니어보드에서 느낀 경영진의 소통의 개념과 그 성격은 다음과 같다.
"소통 하자고 해서 소통을 하려고 하는데, 막상 얘기를 하라고 하면 왜 말을 안합니까? 소통해서 불편한 거 이야기하면 고쳐줄 거고, 그러면 본인이 이득인데 불편한 점, 불만인 점, 바꿔줬으면 좋을 것들 왜 말을 안합니까? 회사는 여러분을 위해 불평을 들어주고 바꿔줄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말 좀 해주십시오."
다소 답답한 마음으로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통이 안된다해서 소통을 하려 하는데, MZ세대들이 잘 이야기를 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강압적으로 소통을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소통이 MZ세대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항상 소통이 안되어서 답답하다는 경영진의 생각 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소통을 하면 여러분에게 이득인데 왜 말을 안합니까. 나 좋자고 하는게 아니라 여러분의 불편함을 없애줄 테니 말좀 하세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뭐가 어렵고, 싫고, 불편한 지 이야기 해주세요! 나머지 고치는 건 경영진이 생각하겠습니다"
"소통하면 여러분이 이득인데 왜 안합니까?"
2) 소통은 귀찮은 일이다
소통은 MZ세대의 이득만이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가 많이 들고, 귀찮은 일인 가능성이 크다. 분명 불편한 점, 못견딜만한 무언가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점을 건의해 고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다. 그저 그런 불편함이라면 대충 버틸 것이고, 정 못 견딜만한 불합리함이라면 회사를 옮기면 된다. 지금 당장 옮기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나갈 수 있을만한 커리어만 쌓고 나가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된다. 굳이 회사에 불편한 점을 건의하고 그로 인해 부차적으로 생기는 여러 귀찮음을 무릅쓰고 회사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할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한다. 즉, 불편한 점, 불합리한 점이 있을때 이것을 말해 주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귀찮은 일이며 굳이 말해준다는 것은 이런 귀찮음을 뛰어넘어 회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줘야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고, 나보다는 회사에 좋은 일이다. 또 지금 불만족스러운 것 투성이지만 버틸만 하고, 또 못버틴다면 적당한 시기에 나갈 예정이라 상관없다.
2. 그럼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1)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참 어려운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소통을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게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굳이 MZ세대와 소통을 할거라면 말이다. 딱히 MZ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다면 이 정도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파격적인 소통의 방식을 도입한다하며 다른 구성원들의 미움을 살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MZ세대와의 소통에서 중요한 점은 소통을 요구할 때에는 회사를 도와 달라는 스탠스가 아닐까.
수틀리면 떠나거나 혹은 참다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에게 굳이 하고 싶지 않은 건의를 했을 때 뒤따라 오는 그 많은 귀찮은 과정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하라는 다그침보다는 부탁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순히 마음가짐을 고치는 것이 끝이 아니고 그게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널 도와줄게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거는 것과 나 좀 도와줄래의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거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것이다. 적어도 무차별적으로 소통 창구를 늘리거나 설문조사를 빈번하게 돌리는 일을 하진 않을 것이다.
2) 효용감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도와줄 때 뿌듯한 기분이 언제 왔었나? 바로 내 도움이 효과적이었을 때, 내가 해준 조언이 효과를 봤을 때, 내가 말한 점을 반영했더니 정말 좋아졌을 때. 즉, 효용감을 느낄 때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다시는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 내 조언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말해달라 해놓고는 그냥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아닌가. 그럼 기분만 나빠진다.
마찬가지다. 내가 회사에 도움을 줬을 때 정말 바뀌는 모습을 봤을 때 뿌듯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의견을 내라고 해서 냈을 때 그 의견을 정말 회사가 듣고 있구나, 또 들은 것을 적용해보려고 노력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 의견을 물어보더니 그 의견을 듣고 정말 바꾸려고 하는구나, 혹은 듣고 생각은 해보고 있구나 등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결과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심사숙고하고 있는 모습, 또는 그 과정이 투명하게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글을 끝내며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경영진과 대화해보면 마치 뛰어넘지 못할 벽이 이 인식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양 쪽다 너를 위한 일을 내가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한 쪽은 딱히 대화할 마음도 없다면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나도 6개월 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다. 확실한 건 90년대생이 오니 대비하자는 어떤 책들처럼 90년대생을 타자화해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MZ세대는 이해 못할 외계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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